3일 낮 12시반경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. 점심시간을 맞아 고객들이 드나드는 문 바깥에 덩그러니 출입자 명부가 놓여있었다. 잠깐 훑어봐도 방문객들이 쓴 실명과 휴대전화번호를 다 알 수 있었다. 지키는 직원이 없다 보니 잠깐 망설이다 그냥 들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. 음식점 측은 “수기 명부를 작성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, 관리 규정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어 잘 몰랐다”고 해명했다.
지난달 30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.5단계가 시행된 수도권에서는 카페와 제과점 등을 포함한 모든 음식점이 출입자의 개인정보를 명부에 기록해야 한다.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 역학조사에 활용하기 위해서다. 하지만 대다수 업소들은 손으로 쓰는 수기 명부를 비치만 해둘 뿐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. 심지어 고객의 개인정보도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다.
● 휴대전화번호까지 그대로 노출
영등포구의 한 커피숍에선 직원들이 카운터에 놓인 명부 작성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. 몇몇 고객들이 “여기 적으면 되느냐”고 묻기조차 했다. 개인정보는 전혀 가려져 있질 않았다. 커피숍 직원은 “정보를 가려야 한다는 걸 몰랐다. 영 불안하면 다른 곳을 이용하라”고 답했다. 이전에 기록된 명부는 안전한 곳에 따로 보관해야 한다는 규정을 아는 곳도 없었다. 성동구의 한 식당에는 의무화 첫날인 지난주 일요일부터 기록된 종이가 전부 입구에 비치된 명부에 함께 꽂혀 있었다. 사장 A 씨는 “어떻게 할지 몰라서 일단 그대로 뒀다”고 했다.
업소 주인들은 명부 작성의 의무화 외엔 관리 지침을 안내받은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. 성동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 씨(53)는 “구청에서 4주 뒤 없애란 안내문을 한 장 주긴 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듣질 못했다”고 말했다.
이날 방문한 업소 가운데 2곳만이 고객 정보를 노출하지 않게 해뒀다. 두 곳도 규정은 몰랐다고 한다. 영등포구의 한 카페는 “누가 시킨 건 아니다. 내가 손님이라도 찜찜할 것 같아서 종이를 오려 붙여 이름과 전화를 가려뒀다”고 했다.
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…지자체 적극 안내해야
보건복지부 기준에 따르면 출입자 명부는 세세한 관리 규정이 따른다. 명부를 쓸 때 가급적 타인의 개인정보를 볼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하며, 기존 명부는 잠금 장치가 있는 장소에 별도 보관해야 한다. 4주가 지난 명부는 파쇄하거나 안전한 곳에서 소각해야 하고, 질병관리본부나 지자체의 역학조사 외의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제공하면 안 된다. 위반하면 행정처분이 내려지거나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. 방역당국도 수기 명부가 허위 기재와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. 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현장 점검은 쉽지 않은 형편이다. 한 지자체 관계자는 “개인정보가 잘 보호됐는지까지 확인하기엔 행정력에 한계가 있다. 좀더 홍보에 신경 쓰겠다”고 토로했다.한국역학회장을 지낸 성균관대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정해관 교수는 “개인정보가 유출되면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, 허위로 작성할 경우 방역망에도 구멍이 뚫릴 수 있다”고 강조했다.
김태성기자 kts5710@donga.com
박종민 기자blick@donga.co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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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eptember 03, 2020 at 07:07P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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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누가 사진 찍으면 어쩌려고…” 음식점 앞 명부, 개인정보 무방비 노출 - 동아일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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